13page
명사 칼럼 ➋ • 독립유공 선열들의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과 합당한 예우가 따라야 한다 13 바친 선열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있었다. 지금부터 115년 전 우리나라는 제국주의 일본의 무력강압으로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다. 한일 강제병 합 전에 이미 일제의 노골적 침략 마수가 시작되었 다. 1853년 미국의 동인도 함대 사령관 페리제독의 포함외교(砲艦外交)에 놀라 당시 일본 에도막부[江戶 幕府]가 250년간 지속해온 쇄국정책을 포기하고 빗 장문을 열고 개항했다. 이것을 기화로 영국, 프랑스 등 열강이 잇달아 일본과 수교화친조약을 맺었다. 일본 국내에 정치적 변동이 일어나 에도막부가 타도 되고 메이지[明治] 천황을 실질적 통치자로 하는 개 화 근대화 세력이 권력을 잡았다. 이들이 일본 근대 화의 주역으로 활동하였고, 운 좋게도 아시아의 제 국주의 국가로 발전하는 데 성공하였다. 대표적 중심 인물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다. 메이지 천황 하에서 총리대신을 4번이나 할 정도로 능력이 출중하였다. 이런 인물이 당시 일본에 있었 다는 것은 조선으로서는 불행한 일이었다. 그는 대 한제국 침략과 1905년 11월 을사늑약 체결로 우리 나라 역사에서 악명 높은 인물이다. 안중근 의사가 그를 처단한 이유다.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 분수령이 되는 청일전 쟁(淸日戰爭)에서 서구 열강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달 리 일본이 대승했다. 이로 인해 조선에서는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러시아와 손 잡아야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대표적 인물이 명성황후 민씨다. 당시 일본 총리대신인 이토 히로부미가 이를 좌시하지 않았다. 일본은 영국과 미국의 러시아 견제라는 아시아 전략 에 편승하여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을 주동하여 명성황후를 참살하였다. 일본 세력을 몰아내고자 의병이 최초 대규모로 봉 기하였다. 이후 20년간의 의병항쟁이 독립운동의 중 이재명 대통령이 6월 6일 서울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에서 열린 제70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 다(연합뉴스 제공).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6월 4일 제21대 대통령 취임 직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현 충탑을 참배하고 있다(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