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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사랑방 • 《열하일기》와 칠석맞이 121 으뜸 여행기'라는 훈장을 달아주 었다. 박지원은 요동(遼東) 벌판 하늘과 땅 사이에 탁 트인 경계를 보고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 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호 곡장(好哭場)]”이라고 외쳤다. 그 ‘당대의 천재’ 연암은 위 ‘산 행’에서 서쪽 하늘 은하수에는 조 각달이 배처럼 걸려있다고 노래 한다. 연암은 견우직녀에게 까막 까치가 다리를 놓아줄 칠석까지 기다리지 말고 저 조각배를 타고 은하수를 건너라고 귀띔한다. 운 명을 기다리지 말고 운명을 만들 라는 연암의 가르침이 아니던가? 음력 7월 7일은 명절의 하나인 칠석(七夕) 8월 29일 곧 음력 7월 7일은 우 리 겨레 명절의 하나인 칠석인데, 양수인 홀수 7이 겹치는 날이어 서 길일로 여겼다. “오늘은 칠석인데, 세속에서 좋 은 날(良辰)이라고 하니, 대인(大 人)을 맞이하여 서로 이야기나 하 고자 합니다. 다만 우중(雨中)이 라 행례(行禮, 예식을 행하는 일) 가 어렵겠으므로, 청컨대 대인께 서는 비옷을 입고 바로 궁궐로 들 어오면 내가 마땅히 맞겠습니다.” 이는 성종실록 1년(1470) 7월 7 일 기록으로 당시 조선에 와있는 중국 사신에게 성종 임금이 도승 지를 시켜 칠석날 잔치를 베풀 테 니 입궐해달라고 했다는 내용이 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칠석날 을 좋은 날로 여겨 잔치를 벌였다 는 기록이 많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은하수 두 끝에 사는 견우성(牽牛星)과 직 녀성(織女星)은 서로 사랑하던 사 이였는데, 옥황상제의 노여움으 로 한 해에 한 번 칠석 전날 밤에 만 은하수를 건너 만나게 되었다 고 한다. 이때 까마귀(오, 烏)와 까 치(작, 鵲)가 날개를 펴서 다리를 놓아주는데, 이 다리를 오작교(烏 鵲橋)라 했다. 이 무렵에는 칠석 속설의 하나로 오작교를 만들려 고 하늘로 올라간 까마귀와 까치 가 땅에서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 는다고 한다. 이날 풍속으로 아낙들은 장독 대 위에 정화수를 떠 놓거나 우물 을 퍼내 깨끗이 한 다음 시루떡을 놓고 식구들이 병 없이 오래 살고 집안이 평안하게 해달라고 칠성 신에게 빌었다. 또 처녀들은 견우 성과 직녀성을 바라보며 바느질 을 잘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이 박지원의 《열하일기》, 서울대 규장각 소장(왼쪽). 박지원 초상. 박지원의 손자인 박주수 그림(경기문화재단소장) 북한 덕흥리 고분의 ‘견우직녀’ 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