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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025년 6월 Column   편집위원 컬럼 작은 소리 큰 울림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약칭 안보리) 결의안 82·83·84호의 채택을 계기 로 내전에서 국제전으로 전환되었으며, 이들 결의안은 유엔군 참전의 법적 근거와 집단안보 체제의 실질적 작동을 가능하게  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6·25전쟁과 유엔 안보리 결의안 82·83·84호 미국 등 참전국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 방어 동북아시아에서 공산주의 확산 저지 성과 유엔 안보리 결의안, 대한민국 소생 · 발전 큰 전환점 “자유는 거저가 아니다” 귀중한 교훈 글ㅣ윤영미(월간 『순국』 편집위원) 자랑스런 위기 극복의 전통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국들 사이에서는 전쟁 이후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기구 설립의 필 요성이 대두했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수상을 중심으로 1945년 4월 25일 50개국 대표 들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국제연합헌장에 서명했고, 10월 24일에 ‘국제연합(UN)’이 정식으로 발족했다. 한국과 유엔의 공식적인 관계는 1947년 9월 17일 제2차 유엔총회에서 한국의 독립문제가 미국과 소 련에 서부터 유엔이라는 국제기구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게 된 이후이다. 미국은 남·북한 문제해결을 위한 미‧ 소 공동위원회가 무산되자, 1947년 9월 '한국독립' 문제를 제2차 유엔 정기총회에 안건으로 제출했고 총회 는 압도적 다수로 이 건의를 채택했다. 그러나 소련은 미국의 제안이 '불법'이라고 이의를 제기하고 한 국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외국군대가 1948년 초에 동시에 철수할 것을 제안했다. 결국, 미국은 수정 초안을 제출 했고, 유엔 감시 하의 남북 총 선거안을 채택했다. 유엔은 1948년 5월 10일 한국에서 자유 총선거를 감시하기 위해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ited Na 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UNTCOK)」을 구성했으나, 소련의 거부로 북한으로 들어갈 수 없 었다. 결국 유엔 감시하에 남한만이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치름으로써 대한민국은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 법정 부로 승인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