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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➋ •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⑥ 119 예수교도, 천도교도 30여 명을  예수교회당 안에 집결시켜 두 세 번 문답 끝에 32명을 죽이 고, 교회와 민가 20여 호를 불 태워버린 진상을 알게 되다. (중 략) 사실을 사실로서 처분하면  가장 간단하지만 (중략) 학살 방 화를 자인하는 것이 되어, 제국 의 입장은 심히 불이익이 되고  (중략) (학살된 한국인들이) 저 항했기 때문에 살육한 것으로  하여 학살 방화 등은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밤 12시에 산 회(散會)하다. 우쓰노미야는 일본군의 의도 적 행위를 조선인의 저항에 대 한 정당한 응징으로 왜곡하고 은 닉하였음을 자인하고 있다. 결 국 아리타 중위는 ‘근신(謹愼)’이 라는 경징계에 처해지고 사실은 묻히게 되었다. 이 사실은 스코 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1889~1970)가 자신의 현장 사진 과 함께 보고서를 작성하여 세계 에 알려 일제의 만행이 드러나게 되었다. 수원 일대의 독립운동 - 일제 형사를 때려 죽인 수원 주민들 수원(지금의 경기도 화성) 일대 에서 일제의 만행은 여러 곳에서 자행되었다. 수원박물관에서 간 행한 『수원사람들의 독립운동』 (2015.9)이라는 화보집을 통해 많 은 사실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일제는 제암리 뿐만이 아니라 화 수리와 수촌리에서도 방화를 하 였고, 만세운동을 하던 주민들에 게 일본 순사가 발포를 하였다. 그 가운데 특이한 것은 3 · 1독립운동 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일제 순사를 죽인 지역은 수원 지 역에서만 있었다는 것이다. 1919년 3월 26일부터 29일까 지 수원 송산면 사강리에서 만세 운동이 있었다. 이때 이를 저지하 던 노구치 고조[野口廣三] 순사를 주민들이 처단하였다. 노구치 순 사는 만세운동을 주도하던 홍면 옥(洪冕玉, 1884~?)에게 발포를 하였던 것이다. 이를 목격한 주민 들은 도망치는 노구치를 붙잡아 돌과 몽둥이로 처단했다. 홍면옥 은 10년의 옥고를 치른 뒤 학생들 에게 한문을 가르치면서 민족의 식을 고취시켰다. 또 다른 사건은 우정 · 장안면에서 일어났다. 4월 3 일의 화수리 만세운동에서 가와 바다 도요타로[川端豊太郞] 순사 가 처단되었다. 수원 지역 주민들 의 강렬했던 독립의지를 살펴 볼 수 있다. 하세가와와 우쓰노미야 가 강행했던 무단정치의 결과였 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 부총장,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문화재위원(사적분과위원장), 국사편찬위원, 러시아 국 립 극동대학교 교환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환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후삼국시대 궁예정권 연구』(혜안, 2007), 『성암 손창원』(두이기획, 2023), 『나 의 일본 여행』(두이기획, 2018), 『나의 그리스 여행』(엘피, 2008) 등이 있고, 번역서로 『정한위략(征韓偉略)』(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23) 등과 다수의 논문이 있다 . 필자 이재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