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page
이야기가 있는 우리 땅 • 수당 이남규 고택, 수당기념관 117 과 문과 급제자 195명을 배출할 만큼 융성했다고 한다. 이남규는 조선의 명신 아계 이산해(李山海)의 12대손이다. 1882년 정시(庭試) 문과에 급제 후 영흥부사 등의 관직을 역임했 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 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왔 다. 이후 안동부 관찰사에 부임하 여 의병을 진압해야 하는 처지가 되자 의병 봉기의 정당성을 인정 하는 상소문을 올린 후 사임하고 다시 귀향하였다. 1906년 인근 홍주(洪州, 현재 홍성)에서 의병을 일으킨 홍주의 병장 민종식이 일본군에게 쫓길 때 자신의 집 사랑채인 평원정(平 遠亭)에 숨겨 주었다. 1907년 9 월 26일 일본군에 체포돼 끌려가 던 중 아산군 송악면 평촌 냇가에 이르러 아들 유재(唯齋) 이충구(李 忠求)와 하인 김응길, 가수복 등과 함께 일본군의 칼을 맞고 순국하 였다. 이때 함께 희생된 김응길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4대 충절의 현장 수당고택 수당고택은 남향으로 세워졌는 데, 안채와 행랑채, 사랑채로 구성 되어 있다. 2014년 중요민속문화 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 되었다. 고택은 모두 5량(樑)의 굴도리 집으로 홑처마에 팔작지붕인데, 사랑채는 정면 6칸에 툇마루와 서쪽 별당인 평원정이 있다. 안채 의 좌측 끝은 맞배지붕이고, 대청 전면만은 빗물이 들이치지 않도 록 겹처마로 처리한 것이 특징이 다. 이 집의 안채는 중문간(행랑채) 을 ‘ㅡ’ 자형으로 배치해 대문을 열면 훤히 보이도록 했고 안채를 ‘ ㄷ ’ 자형으로 감싸 전체적인 구조 가 ‘ㅁ’ 자 형태를 하고 있다. 안채 는 여자들의 주생활 영역으로 깊 숙이 위치해 외부로부터 격리·보 호 해야 했기 때문에, 안주인의 거 처는 대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끝 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사랑채는 낮은 기단 위에 소박 한 자연석 돌계단 위에 세워졌는 데, 정면 여섯 칸, 측면 두 칸으로 당당하다. 좌우에 온돌방이 있고, 가운데 대청마루가 있다. 사랑채 뒤에 퇴를 달고 부엌을 꾸민 실용 적 발상, 특이한 구조와 배치, 운 안채의 모습 사랑채에 걸려있는 ‘평원정’ 편액(국가유산청 제공). 유명한 추사 김 정희의 절친 이재(彛齋) 권돈인(權敦仁, 1783~1859)이 쓴 원래의 현판은 없어져 다시 제작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