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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➋ •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⑧ 115 키 가즈시게[宇垣一成]였다. 사이토와 6·10만세운동·광주학 생독립운동 사이토의 민족분열책도 조선 민족의 독립의지를 꺾지는 못했 다.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독 립운동이 사이토 재임 시절에 일 어났다. 6·10만세운동은 융희황 제(순종)의 인산(장례)일에 일어났 다. 돈화문에서 집결하여 시위하 려고 했지만. 사전에 기밀이 누설 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지는 못 했다. 이 만세운동에서는 돈화문 에서 거리가 가까운 중앙학교 학 생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다고 한다. 사이토 시기에는 또 하나의 거 대한 민족운동이 일어났다. 1929 년 11월 3일의 광주학생독립운 동이다. 이 시기는 사이토의 두번 째 총독 재임시절이었다. 실제로 는 3·1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독립 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관련된 연구가 지역 연구처럼 간 주되어 그 이해의 단계가 높지 않 은 듯 하다. 게다가 5·18광주민주 항쟁이 워낙 큰 사실로 존재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에 서대문 형무소와 독립운동기념관 답사를 갔는데, 6·10만세운동은 소략한 듯 해서 서운했던 기억이 있다. 여기서는 대규모의 독립운동에 관해서만 언급했지만, 그 밖에 도 드러나지 않은 조선총독과 총독 부 관리들에 대한 무력 시위는 적 지 않았다. 그러나 사이토는 일본 군··정계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인 물로 1927년 4월 제네바 해군군 축회의(6.2~8.4) 일본 수석전권위 원으로 참석하였다. 그 뒤 12월에 는 조선총독을 사임하고 중앙 정 계에 진출했다. 그 뒤를 이어 야마 나시 한조[山梨半造]가 제4대 조 선총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야 마나시는 금전과 얽혀 1년 여 재 임한 뒤 모든 공직에서 은퇴하였 다. 그리고 그 뒤로 사이토 마코토 가 다시 제5대 조선총독으로 부 임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 부총장,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문화재위원(사적분과위원장), 국사편찬위원, 러시아 국 립 극동대학교 교환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환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후삼국시대 궁예정권 연구』(혜안, 2007), 『성암 손창원』(두이기획, 2023), 『나 의 일본 여행』(두이기획, 2018), 『나의 그리스 여행』(엘피, 2008) 등이 있고, 번역서로 『정한위략(征韓偉略)』(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23) 등과 다수의 논문이 있다 . 필자 이재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