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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성수면 출신의 의병장 정재 이석용 선생은 1907년 을사늑약과 군대 해산에 분개하여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심했다. 그는 성수산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상이암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비밀리에 규합하고, 무기를 모으며 구체적인 거사 전략을 세웠다. 이때 동지들과 함께 나라를 구하자는 결의를 담아 지은 군가인 '격중가(激衆歌)'가 전해진다.
상이암이 의병들의 강력한 항일 투쟁 기지로 쓰이자, 이를 알아챈 일본군(왜병)들은 의병의 근거지를 없애기 위해 상이암에 불을 질렀다. 이 방화로 인해 유서 깊은 사찰의 건물들이 한 차례 완전히 소실되는 큰 수난을 겪었다. (이후 1958년에 이르러서야 지역 주민들과 재건위원회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중건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안내판등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