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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2025년 8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② 장충단 공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벚꽃을 심는 등 공원시설로 만들 었다. 사이토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도 고다마와 함께 잔인하게 희 생된 명성황후를 기념하는 제단 에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강 제로 체결한 이토의 추모 사찰 을 건립한 것이다. 이토는 명성 황후를 살해할 때 원격 조정한 인 물이었다. 이토는 2차 이토 내각 (1892~1896) 때 총리로서 청일 전쟁을 지휘하고 1895년 청나라 와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한 다 음, 미우라 고로[三浦梧樓]를 주한 일본 공사로 임명해 명성황후를 시해하도록 지시했다. 정무총감 고다마는 하쿠분지의 설립 목적을 ‘조선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훈업을 영구히 후세 에 전’하고, ‘일본불교 진흥 및 일 본인과 조선인의 굳은 정신적 결 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궤 변을 늘어놓았다. 더욱이 하쿠분지의 정문은 경 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을 뜯어와 만들었으며, 문의 이름은 경춘문 (慶春門)이라 했는데, ‘춘’은 이토 의 호인 춘무(春畝)에서 따온 것이 다. ‘경춘’은 이토를 경하한다는 의미이다. 사찰의 자재는 조선의 궁궐을 해체하여 보충하였다. 광 화문의 석재, 경복궁 선원전과 부 속 건물, 남별궁의 석고각 등이 사 용되었다. 하쿠분지는 이토의 23 주기 기일인 1932년 10월 26일 에 완공되었다. 낙성식에는 이광 수, 최린, 윤덕영 등 조선인 유명 인사 등 천여 명이 참석하였다. 낙 성식을 할 때의 조선총독은 우가 하쿠분지(박문사) 본당 전경(윤창화 제공) 사이토 기념관에 전시 중인 정주 오산학교 증정 병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