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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➋ •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⑧ 113 사이토의 조선총독부 건립, 그리고 이토 찬양 사이토는 현재는 복원된 경복 궁 흥례문(興禮門) 자리에 조선총 독부를 세웠다. 사이토는 멀쩡하 게 있던 흥례문을 파괴하고 조선 총독부를 지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선총독부 정남 방향인 남산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만들었다. 조선신궁은 일본의 신사로서 조 선 모든 신사의 본산이었다. 조선신궁의 위치는 조선 무당 들 가운데 최고의 위치에 있는 국 무당이 있던 장소였다. 조선의 국 무당은 쫓겨 가서 지금의 인왕산 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도 신비스런 모습의 선바위와 함께 국사당(國師堂)이 있다. 조선총독 부가 완공되기 1년 전인 1925년 에 옮겼다. 조선총독부는 1926년 7월에 5층 규모로 완공하였다. 그러나 1995년 김영삼 대통령 지 시로 순식간에 해체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이토는 1910년 8월 ‘경 술국치’를 강요하였던 테라우치 총독의 동상도 세웠고, 이토 히로 부미를 제사하는 원찰인 ‘하쿠분 지[博文寺]’도 세웠다. 사이토는 조선인의 얼을 빼고 일본의 혼을 불어 넣는 고도의 정신적 식민 통 치를 기술적으로 시행한 총독이 었다. 이토 히로부미 추모 사찰 ‘하쿠분지’ 한편 사이토는 엄청난 일을 계 획하였다. 정무총감으로 데라우 치 마사다케의 사위인 고다마 히 데오[兒玉秀雄, 1876~1947]의 건 의에 따라 1929년 12월에 장충단 을 공원지대로 만들고, 이 지역에 이토 히로부미의 추모 사찰인 하 쿠분지를 건립한 것이다. 이 지역 은 고종황제가 갑신정변에서 희 생된 순국자와 을미사변(1895년 10월)으로 숨진 명성황후의 혼을 달래고, 이때 순직한 시위대장 홍 계훈(洪啟 薰) 등을 추모하기 위해 1900년에 세운 초혼단(招魂壇)이 었다. 대한제국에서는 장충단에서의 의례를 매우 중요시하여 제사를 지낼 때에는 군악을 연주하고 군 인들이 조총(弔銃)을 쏘았다고 한 다. 그러나 1910년 8월 장충단은 일제에 의해 폐사되었다. 1920 년대 후반부터 일제는 이 일대를 ➐  사이토 총독 재임 때인 1926년 10월 1일에 준공된 조선총독부 청사(위키백과 제공) ➑  사이토 마코토 기념관과 고택 입구에 있는 표지판  ➒  사이토 고택 정원에 세워진 사이토 흉상과 부인상(왼쪽, 필자 촬영) ➑➐ 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