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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➋ •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④ 113 이를 보좌할 인물이 따라왔다. 부 통감으로 와서 경술국치 후에 초 대 정무총감이 된 야마가타 이사 부로[山 県 伊三郞, 1858~1927]이 다. 정무총감은 조선총독부의 2인 자로 군사권을 제외한 나머지 분 야의 책임자였다. 실무 행정에 있 어서 최고 권력자로 부총독이라 고 할 수 있는 직책이었다. 게다가 야마가타 이사부로는 정한론자이며 조슈번 군벌의 막 후 최고 실력자인 야마가타 아리 토모[山県 有朋]의 양자였다. 누 나의 차남이었다. 아리토모는 요 시다 쇼인의 쇼카 손주쿠 학생으 로 이토 히로부미와 동문 수학하 였던 인물이다. 당시 세평에 이 토보다 먼저 아리토모를 죽였어 야 한다는 풍문이 나돌 정도로 극 혐한자였다. 그러므로 이사부로 는 아리토모의 분신과도 같이 조 선에 대하여 강압적인 식민지 정 책을 수행하였다. 그는 데라우치 가 그만 둔 다음에도 정무총감직 에 있다가 후임인 하세가와 요시 미치[長谷川好道]가 3·1독립운동 으로 해임되자 한때 그 후임 총 독으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결국 정무총감직을 내려놓았다(재임, 1910.10.1.~1919.8.12). 달리 보 면 일제 식민지 초창기의 가혹한 무단정치는 이사부로의 소행이라 고 할 수 있으며, 결국에는 야마 가타 아리토모라는 막후 조슈번 군벌의 정략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무단정책을 펼쳤던 데 라우치나 하세가와 모두 아리토 모의 입김으로 조선총독이 된 조 슈번 출신 인물들이었다. 하세가 와의 뒤를 이어 사이토 마코토[齋 藤實]가 부임하면서 조슈번 출신 총독은 대가 끊기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 조슈번의 세력도 이 무 렵을 계기로 점차 소멸 과정을 밟 게 된다. 그런데 정무총감으로 식민지 정책에 열중했던 이사부로를 추 모하는 관광열차가 운행되었던 적이 있다. 이사부로는 체신대신 을 하면서 일본 규슈[九州] 남부의 히사쓰선을 개설하였다고 하여 이를 기념하는 관광열차를 이사 부로호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 다. 지금은 그 열차가 하카타에서 벳부로 가는 새로운 관광열차인 간파치/이쿠로쿠호로 탈바꿈하여 운행되며 이사부로호는 폐지되었 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본인들 의 인식에 조선총독부는 지워지 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 부총장,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문화재위원(사적분과위원장), 국사편찬위원, 러시아 국 립 극동대학교 교환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환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후삼국시대 궁예정권 연구』(혜안, 2007), 『성암 손창원』(두이기획, 2023), 『나 의 일본 여행』(두이기획, 2018), 『나의 그리스 여행』(엘피, 2008) 등이 있고, 번역서로 『정한위략(征韓偉略)』(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23) 등과 다수의 논문이 있다 . 필자 이재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