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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2025년 8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② 구했고, 상당히 많은 민족지도자 들이 변절하였다. 최린(崔麟)은 1927년 조선총독 부 지원을 받아 아일랜드 등 구 미 30여 나라를 다녀 온 뒤에 소 위 ‘대동방주의(大東方主義)’, ‘일 선융합(日鮮融合)’을 강조하며 일 제를 찬양하였다. 뒤에 ‘가야마 린 [佳山麟]’으로 창씨개명하였다. 해 방이 된 뒤에 최린은 반민특위에 소환되었다. 최남선(崔南善)도 사이토에게 매수된 민족 지도자 가운데 하나 였다. 그는 출옥하자 바로 조선총 독부의 지원을 받아 동명사(東明 社)를 차리고 『동명』이라는 잡지 를 발행했다. 1924년에는 『시대 일보(時代日報)』라는 신문도 발행 했는데, 조선인 무마용 홍보물이 었다. 그 뒤로 최남선의 친일적 행 위는 지속되었고, 1943년 이후에 는 전쟁에 동원되는 조선인 학병 지원을 강요하는 선두에 섰다.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던 이광 수(李光洙)는 1924년 3월 말에 귀 국하여 ‘민족개조론’을 강연하고 다녔다. 그는 ‘가야마 미쓰로[香山 光郞]’로 창씨개명했다. 민원식(閔源植)은 사이토에 의 해 조선인의 참정권 청원운동이 라는 정치 놀음의 앞잡이가 되었 다. 그는 1921년 2월 16일 세번 째로 참정권 청원을 하기 위해 도쿄에 갔다가 도쿄역 호텔에서 양근환(梁槿煥) 의사에게 살해되 었다. 양의사는 무기징역형을 받 았다. 그 밖에도 사이토는 조선인들 을 도지사로 임명하여 우대하는 척 하는 정책을 취했으나, 결국은 조선인 이간책이었다. ➌   최린(1878~1958) ➍  최남선(1890~1957) ➎   이광수(1892~1950) (이상 한국학중앙연 구원 제공) ➏  현재 서울미술관  건물(일제강점기 경 성지방법원, 경성복 심법원, 고등법원 건 물)에 남아있는 사이 토 마코토 조선총독 의 글씨 ‘정초’ 주춧 돌(국가유산청 제공).  그 왼쪽에는 ‘昭和二 年(1927년) 十一月  子爵 朝鮮總督 齋藤 實’이라고 작은 글자 로 새겨져 있다.  ➎ ➏ ➌ 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