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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2025년 6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① 별(4평)로 방 1개에 부엌을 갖춘 4호연립주택(총 건평 16평)이었 는데, 공동변소와 공동우물을 사 용하였다. 피해자의 후손들은 2006년 ‘구 로군용지 명예회복 추진위원회’ (위원장 한무섭)를 결성하여 ‘진 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요청했다. 과거사위 원회는 “국가가 행정 목적을 달성 하기 위해 민사소송에 개입하고 공권력을 부당하게 남용한 사건” 이라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유족들은 이에 근거하여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역 시 승소했다. 구로구청 점거농성 사건 구로구청 점거농성 사건은 1987년 12월 16일 실시된 대통 령 선거에서 전두환 군사정권의 부정선거 의혹에 맞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벌인 투쟁이었다. 사 건은 투표 당일인 12월 16일 오 전 11시 20분경 한 여성이 공정 선거감시단 단원에게 투표함이 구로구청 현관 앞에서 반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제보하면서 시작 되었다. 공정선거감시단은 투표 가 끝나기 전 투표함을 이동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면서 이를 부 정투표함으로 규정했다. 해당 투 표함을 깔고 앉은 채 시작된 항의 는 부정선거 의혹이 증폭되면서 곧 점거 농성으로 발전하였다. 농 성 시민은 순식간에 6천여 명으 로 불어났는데, 전두환 군사정권 은 강제진압 방침을 정했다. 12월 18일 4천여 명의 ‘백골단’ 경찰은 최루탄을 난사하며 구로구청에 난입하였고, 헬기까지 동원한 강 제 진압 과정에서 5층 옥상에서 떨어진 서울대생 양원태가 척 추 골절상을 당하는 등 17명이 크게 다쳤다. 그리고 연행된 1,050명 중에서 105명이 구속되었다. 구로 평화의 소녀상 구로역 북쪽 광장에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을 당한 할 머니들을 기억하는 ‘구로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구로 평화 의 소녀상 제막식은 해방 71주년 을 맞이하는 2016년 8월 15일에 거행되었다. 소녀상 건립은 2016 년 1월부터 SNS에서 “우리도 소 녀상 건립하면 어때요?”, “그거 좋 은 생각이네요”와 같은 이야기가 오가며 시작되어 1만 원씩 십시 일반 성금을 모으게 되었고, 구로 구의회의 결의로 구로구청에서도 일부 예산을 지원하면서 성사되 었다고 한다. 현장에는 구로 평화 ➒  조선어학회 사건의 윤병호가 광복아파트에서 서거한 부음을 전하고 있는 동아일보 기사(1974.7.13.) ➓  의열단 출신 이화익이 원호병원에서 서거했다는 부음을 전하고 있는 조선일보 기사(1978.3.4) ➒ 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