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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➋ •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⑧ 111 청년 장교들이 ‘메이지유신’을 흉 내내 이른바 ‘쇼와유신(昭和維新)’ 을 목적으로 일으킨 쿠데타였다. 하룻만에 고위직을 포함하여 많 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사이토도 이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사이토는 장수 총독으로서 우 리에게 가혹한 정책을 많이 실시 하였다. 3·1독립운동 무마라는 이 유로 형식적으로 문화정치를 표 방했으나, 실제로는 조선을 일본 에 흡수 동화하여 그 정체성을 말 살하려는 의도의 정책을 실시하 였다. 사이토의 조선정책 사이토는 유일하게 두차례 조 선총독을 역임했으며, 또한 10년 2개월로 가장 오랫동안 조선총독 을 지냈던 인물이다. 첫번째 총독 재임시절의 사이 토가 펼친 조선 정책은 이른 바 ‘문화통치’였다. 전임 하세가와의 ‘무단통치’로 말미암아 3·1독립운 동이 일어났으므로 무단통치를 지양한다는 의미에서 ‘문화통치’ 를 시행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실 체는 달라진 것이 없고 이름만 바 꾼 것이었다. 사이토는 하세가와 때의 헌병 경찰제를 보통경찰제로 이름을 바꿨지만, 그 실체는 변하지 않았 다. 사이토가 주장한 ‘1면 1주재 소’ 방침은 행정 확대가 아니라 감 시기구의 증가였고, 자치제 실시 또한 허울뿐이었다. 사이토의 또 하나의 대표적 정 책이 교육정책이었다. 이른바 ‘신 교육령’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실 질적 의도는 식민지 차별화였다. 신교육령에 의거하여 일제는 경 성제국대학을 설립하고, 중등 과 정을 고등보통학교와 중학교로 구분하였다. 경성제국대학 설립 은 조선 거주 일본인의 증가에 따 른 고급 교육 수요 충족을 위한 조 치였다. 조선어 사용을 기준으로 고등보통학교와 중학교를 구분한 것도 일본인을 위한 배려였다. 조 선인 교육 차별을 목적으로 학제 를 바꾼 장본인이 사이토였다. 사이토의 민족대표 매수 사이토는 정보정치에 능하고 정치적 감각도 뛰어나서 많은 민 족지도자들을 매수하였다. 사이 토는 설득과 협박으로 ‘변절’을 요 ➊ ➊ 일본 동북지방 미즈사와의 사이토 고택에 있는 사이토 기념관 ➋ 사이토 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는 사이토 초상화(이상 필자 촬영) 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