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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조선총독인 사이토 마코토 는 제5대 총독으로도 부임하여 유 일하게 총독직을 두번 했던 인물이 다. 그리고 재임 기간도 가장 길었 다. 사이토는 일본 동북부 이와테 [岩手]현 미즈사와[水澤]의 번사(藩 士) 가문 출신이다. 초명은 토미고 로[富五廊]인데, 뒤에 마코토로 개 명하였다고 한다. 사이토는 하세가 와의 후임으로 1919년 3·1독립운 동 이후 무마를 위해 조선총독으로 부임하였다. 3·1독립운동 이후 형 식적으로 문화정치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조선을 일본에 흡수 동화 하여 그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의도 의 정책을 실시하였다.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⑧ 제3대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 [齋藤實, 1858~1936] 1919~1927, 1929~1931 두번이나 총독 지내 신교육령, 경성제국대학 등 일본인 위주 교육 기만적 ‘문화정치’내세워 조선총독부 청사, ‘박문사’ 건립 글 이재범(전 경기대학교 부총장) 제3대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 사이토는 일본의 내각총리대신 (총리)를 거쳐 내대신(內大臣)까 지 올랐다. 조선총독들 가운데 사 이토만이 유일한 해군 출신이기 도 하다. 사이토는 1879년 일본 해군병학교(海軍兵學校)를 졸업 하고, 1884년 미국 유학을 했으 며, 일본공사관 소속 해군무관으 로 일하기도 했다. 귀국하여 해군 차관·군무국장을 역임했으며, 해 군 중장으로 러일전쟁에 참전하 였다. 1906~14년 해군상(海軍相) 을 거쳐 1912년에 대장으로 승진 했다. 제3대 조선총독이 된 사이토 는 총독이 되기 이전에도 조선 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사이토는 1894년 경기도 안산 풍도(豊島)에 서 선전 포고 없이 일본의 도고 헤 이하치로[東鄕平八郞] 함대가 청 군을 태운 영국 선적 ‘고승호(高陞 號)를 격침시킨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2차 가쓰라[桂太郞] 내각 때 한국 과 일본의 합병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참석하기도 했다. 1913년의 제1차 야마모토[山本] 내각 때에 는 해군대신으로 10여 일 동안 한 반도를 조사한 적도 있었다. 사이토는 1925년에 자작(子爵), 그리고 두번째 조선총독을 역임 (1929~31)한 뒤에 총리가 되었 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순탄치 않 아 일본 군부의 ’2·26사건‘(1936) 때 살해되었다. 2·26사건은 육군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② 110 2025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