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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칼럼 ➊ • 총칼 대신 문학·음악·신앙·체육·언론 등으로 일제에 맞서싸웠던 애국자들 11 게 했다. 1950년의 6 · 25전쟁 때 정지용이 ‘납북’되었는데 도 ‘월북’했다는 오해로, 정부당국이 그 가사를 쓰 지 못하게 하자 유족은 박화목(朴和穆) 시인 및 이 은상(李殷相) 시인과 협의해 채동선 곡에 가사를 짓 게 부탁했고, 그래서 박 시인으로부터 1953년에 「망 향」이라는 제목의 가사가, 그리고 이 시인으로부터 1964년에 「그리워」라는 제목의 가사가 뒤따르게 되 었다(필자는 2024년에 출판한 자신의 『대한민국의 북방정책』 142~143쪽에서 박 시인과 이 시인이 각 각 1933년과 1936년에 그 가사를 지었다고 썼는데, 그것은 착오였다). 그들의 뒤를 이어 소프라노 음악 가 이관옥(李觀玉) 교수는 1960년대에 「고향 그리 워」라는 가사를 지었다. 광복 80주년, 이제 대한민국 쇠퇴하지 않도록 노력 해야 이렇게 국내에서도 각 부문에서 일제에 대한 저항 은 계속되었고, 이것은 해외의 독립운동과 연결되며 광복의 한 요인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상대적 의 미에서 편히 살고 있는 배경에는 고난과 순국을 마 다하지 않았던 애국 선열들과 지사들의 희생이 있었 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대한민국이 쇠퇴의 길에 들 어서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광복 80주년을 맞는 우리 후손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 선근공원에 세워진 작곡가 채동선 부조 모습(오문수  제공) 정지용 시집 초판본(1938년)의 표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943년 중국 심양에서 태어났다. 현재 단국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임 중이다.   필자 김학준 정지용 시인(동아일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