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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2025년 8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① 서울에서 진행된 무정장군 환영 회에서 무정장군과 함께 말을 타 고 종로 일대를 행진하여 ‘백마 탄 여장군’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 다. 1930년대 부산과 진해에서 혁명적 노동운동에 헌신한 김형 윤(1909~1973)은 김형선의 남동 생이다. 김형선은 1925년 조선공산당 이 만들어질 때 12명의 발기인 중 가장 어린 나이로 참여했다. 그는 1926년 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 로 일제 경찰의 탄압을 받았을 때 는 상하이로 망명하여 체포를 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하이에 있 던 박헌영, 김단야 등과 연계하 여 조선의 독립과 조선공산당 재 건을 도모하는 국내활동을 하던 1933년 7월 15일에 한강인도교 입구에서 끝내 체포되고 만다. 이 때 그의 경성 근거지가 창덕궁 앞 와룡동(121번지)이었다. 이에 대 해 당시 『동아일보』는 “지하운동 의 중요인물 노량진과 인천서 체 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 형선 을 “지하운동의 거두”로 표현했 다. 이 일로 징영 8년형을 선고 받아 옥살이를 하게 된 김형선은 1941년부터 시행된 「조선사상범 예방구금령」 탓에 1945년 광복 이 되어서야 감옥에서 나올 수 있 었다. 순종의 서거와 송학선의 의거 창덕궁 금호문 입구에는 ‘송학 선 의사 의거터’ 표석이 설치되어 있다. 평소 안중근 의사를 존경했 던 송학선(1897~1926)은 1926 년 순종이 서거했을 때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척살하 기로 결심하고 과자 행상을 가장 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4월 28일 오후 1시 10분 경 3명의 일본인 이 탄 승용차가 창덕궁에서 나오 자 가운데 앉은 인물이 총독이라 고 판단한 송학선은 쏜살같이 달 려들어 3명 중 2명을 칼로 찔렀 다. 하지만 송학선 의사가 찌른 인 물은 사이토 마코토가 아니라 사 이토 마코토를 닮은 상업회의소 의원 사토 코지로[佐藤虎次郞]였 다. 송학선은 격투 끝에 현장 인 근에서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고 1926년 11월 10일 순국하였다. ➓ ➓ ‘용성스님 거주 터’ 표석(서울시 종 로구 봉익동) ⓫ 백용성이 창건한 대각사 전경 ⓬ 지하운동의 주요 인물 김형선의 검사 국 송국 소식을 전하 는 『동아일보』 기사 (1933.8.17) ⓫ 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