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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➊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㉔ 107 권동진 집터와 오세창 집터 3 · 1 운 동 당 시 민족대표 33인으 로 참 여 한 천 도 교 인 사 권 동 진 (1861~1947)과 오 세창(1864~1953) 의 집은 돈의동에 서로 가까이 있었 다. 권동진과 오세 창은 최린, 정광조, 홍병기와 더불어 천 도교 내 독립운동 준비위원을 맡 아 3·1운동 준비 과정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3·1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징역 3년 형을 언도받고 옥살이를 했다. 권 동진은 감옥에서 나온 이후에도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에 주도적 으로 참여하여 홍명희에 이어 부 회장을 맡기도 했는데, 광주학생 독립운동이 벌어졌을 때는 이를 지원하다가 옥살이를 한 번 더 하 기도 했다. 하지만 권동진과 오세창의 집 터에 이를 알리는 표석조차 설치 되어 있지 않은 것은 대단히 유감 스러운 부분이다. 백용성 스님과 대각사 백용성(1864~1940)이 1911년 에 창건한 대각사(大覺寺)는 봉익 동(2번지)에 있다. 백용성은 3·1 운동 당시 불교계를 대표하여 만 해 한용운과 더불어 민족대표 33 인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1년 6 개월의 옥살이를 하고 나온 백용 성은 이후 불교혁신운동에 매진 했는데, 1925년에는 대각교를 창 립하여 불교혁신운동의 근거지 로 삼았다. 대각사는 만해 한용운 이 1916년 이래 서울에 있을 때 주로 묵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1945년 12월 12일에는 백범 김 구를 비롯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의 귀국을 환영하는 귀국 봉영회가 열리기도 했다. 대각사 입구에는 이곳이 ‘용성 스님 거주터’임을 알리는 표석이 설치되어 있고, 대각사의 독립운 동을 소개한 안내판도 설치되어 있다. 김형선과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 마산 출신의 김형선(1904~ 1950)은 민족의식이 투철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 동에 뛰어든 3남매 독립운동가 중 장남이었다. 여동생 김명시 (1907~1949)는 중국 화북지방에 서 활동한 팔로군(八路軍) 포병대 장을 지낸 무정장군의 비서도 지 냈는데, 해방 직후인 1945년 말 ➑  권오설에 대한 수사소식을 전한 『조선일보』 기사(1926.6.20) ➒  종로3가에 설치된 ‘6·10독립만세운동 선창(先唱)터’ 표석 ➑ 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