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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➊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㉓ 107 소개하는 전시물을 만날 수 있다. 실미도 사건의 역사현장 실미도 사건은 우리나라 최초 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실 미도’(2003)로 잘 알려져 있다. 실 미도 부대(684부대)는 1968년 북 한의 특수부대인 124군부대가 청 와대를 습격하려고 침투한 1·21 사태가 발단이 되어 그해 4월 1 일 실미도에서 창설된 특수부대 였다. 하지만 국제정세가 평화무 드로 전환하면서 실미도 부대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관심이 약화 되었고, ‘국가기밀을 염려하여 처 단될 것’이라는 소문마저 돌았다. 결국 남은 부대원 24명이 기간병 14명을 사살하고 폭동을 일으켰 고, 이들은 “청와대로 가서 대통 령에게 따지자!”면서 인천을 거쳐 버스를 탈취하여 서울로 향했다. 이들이 대방동 로터리에 이르렀 을 때 군경은 만반의 태세를 갖추 고 있었고, 대치 중 버스가 유한양 행 앞 가로수를 들이받으면서 수 류탄이 터질 때 3명을 제외한 전 원이 사망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이들은 군사재판을 통해 총살형 에 처해졌다. 남이나 북이나 분단 상황에서 정권안보를 위해 애꿎 은 시민들을 희생시키고 있던 시 절의 가장 극단적인 사건의 하나 가 실미도 사건이었던 셈이다. 유한양행 빌딩 앞 인도에는 이 곳이 1971년 8월 23일 벌어진 실 미도 사건의 현장이었다는 사실 을 알리는 동판이 설치되어 있다. 미군 기지 ‘캠프 그레이’ = 미군 ‘502 군사정보단’ 대방역 앞 ‘스페이스 살림’ 자리 는 1952년부터 미군기지 캠프 그 레이가 있던 곳이다. 캠프 그레이 는 여의도 비행장과 연결되어 표 면상 미군의 물류기지로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은 미군 ‘502 군사 정보단’의 비밀스러운 첩보활동 공간이었다. ‘502 군사정보단’에 서 일한 마이클 리에 따르면 해당 부대는 “A(알파), B(브라보), C(찰 리), 3개 중대로 편성”되어 있었 는데, “알파 중대는 한미 합동으 로 북한 귀순병, 귀순민간인, 자 수간첩, 체포간첩, 송환어부들을 상대로 심문 작업을 했”고, “브라 보 중대는 미군 단독으로 방첩활 동을 했으며, 찰리 중대는 미군 단 ➊ ➊ 유일한기념관(유한양행 사옥 1층, 이하 현장 사진은 필자 촬영) ➋ 영화 ‘실미도’ 포스터 ➌ ‘실미도 사건 현장’ 동판(유한양행 사옥 앞 인도 바닥) ➋ 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