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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2025년 8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① 투쟁의 한복판에서 서울대 문리 대생들의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 식’에서 조사(弔辭)를 읽었던 송 철원 학생을 중앙정보부 요원이 연행하여 고문을 한 ‘송철원 린치 사건’에 협조한 경찰서도 중부서 였다. 6·10만세운동의 현장과 권오설 집터 종 로 3 가 인 근 장 사 동 에 는 ‘6·10만세운동의 기획자’로 불리 는 권오설(1897~1930)의 집이 있었다. 6·10만세운동은 순종(융 희황제)이 서거한 직후인 1926 년 4월 말경부터 준비되었다. 조 선공산당 창당에 관여했고, 고려 공산청년회의 조직부 책임자를 거쳐 책임비서를 맡은 권오설은 1926년 5월 1일 중국 안동현(安 東縣)에서 김단야를 은밀히 만나 논의한 다음 만세 운동 계획을 구 체적으로 추진하였다. 권오설은 조선공산당과 분리된 ‘6·10투쟁 특별위원회’를 조직하여 그 책임 을 맡았다. 특별위원회는 대중시 위를 제2의 3·1운동으로 발전시 킨다는 계획을 세웠고, 운동의 성 과를 모아 사회주의계와 민족주 의계를 포괄하는 통일전선체를 세운다는 방침도 정했다. 이를 위해 권오설의 ‘6·10투쟁 특별위원회’는 천도교 구파(혁명 파)와 조선노농총동맹, 조선학생 과학연구회와의 연대도 성사시켜 냈고, 발행 주체를 ‘대한독립당(大 韓獨立黨)’으로 하는 격문 인쇄까 지 마쳤다. 만세 운동의 준비도 각 방면에서 6월 초까지 순조롭 게 이뤄지고 있었는데, 6월 4일 격문 이 우연히 일제 당국에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격문을 보관하 던 개벽사가 급습당하면서 관련 자들이 체포되기 시작했다. 권오설도 6월 7일 장사동 집 에서 체포되고 말았다. 그래도 다 행인 것은 만세운동이 순종의 장 례식이 열린 6월 10일 장례식 행 렬을 따라 종로3가서부터 거행되 었다는 점이다. 이를 주도한 이는 일제의 검거망을 피한 학생들이 었다. 이 사건으로 5년형을 언도 받은 권오설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이어가다가 1930년 4 월 17일 옥사하고 말았다. ➎ ➎ ‘성대(城大)반제동맹사건’으로 체포된 신중현 등이 본정경찰서에서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는 장면(1931.11.6, 조선일보) ➏ 중부서 형사실에서 벌어진 박성근 고문치사 사건을 보도한 『경향신문』 기사(1948.7.27) ➐ 중부서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 사건을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1949.6.7.) ➏ 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