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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➊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㉔ 105 에서 시위가 끊이지 않던 시절 이었다. 학생운동의 중심에 있 던 김귀정도 이 항의투쟁에 참 여했는데, 그해 5월 25일 충무 로 대한극장 앞 가두투쟁을 벌 이던 중 경찰의 ‘토끼몰이’ 진압 으로 극장 건너편 골목 입구에 서 압사(壓死)당하고 말았다. 서 울시가 설치한 ‘김귀정 사망 현 장’ 동판은 충무로역 8번 출구 앞 바닥에 자리하고 있다. 독립운동 탄압의 선봉대, 본정 경찰서 터 본정(本町)경찰서는 남대문로 에 있다가 1923년에 저동(62- 1)으로 이전했는데, 일제강점기 내내 우리의 독립운동을 가혹하 게 탄압한 대표적 경찰서의 하나 였다. 본정서가 벌인 대표적인 독 립운동 탄압 사건은 종로서와 합 작으로 벌인 1919년의 대동단 사 건,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 원 출신 유범규(1881~1949)를 중심으로 임시정부 공채 발행과 군자금 모금, 나아가 1928년에 일제의 주요기관 폭파를 겨냥한 폭탄제조와 구입 등을 벌이던 중 체포된 사건, 의열단 중앙집행위 원을 지낸 서응호(1899~?)를 중 심으로 한 1929년의 ‘의열단 사 건’, 1931년 신중현을 비롯한 경 성제대 학생들의 비밀결사조직이 침탈당한 ‘성대(城大)반제동맹사 건’ 등을 들 수 있다. 광복 이후 중부경찰서로 이름 은 바뀌었지만, 일제강점기의 습 성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1948 년 1월 수도경찰청의 노덕술(수 사과장)과 최운하(사찰과장) 등이 장택상 저격사건의 혐의자로 체 포한 박성근(일명 임화)을 상대 로 고문수사를 벌이다 사망하자 시 신을 한강의 얼음 속에 버린 다음 도주한 것으로 가장한 ‘수도청 고 문치사 사건’을 벌인 곳도 중부서 였다.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1949년 6월 6일의 반민특 위 습격사건 당시 행동대 역할을 한 윤기병 경찰서장을 비롯한 80 여 명의 경찰이 중부서 소속이었 다. 1964년 굴욕적 한일회담반대 ➊ ➊  경성부윤이 조선총독부에 보내는 ‘학생소요에 관한 건 보고’ 문서(1919.3.1) ➋  김귀정 사망현장 동판(이하 현장 사진은 필자 촬영)  ➌  본정서가 벌인 유범규 사건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1928.6.16) ➍  본정서가 벌인 의열단 사건을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1929.11.3) ➋ ➌ 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