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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전설(116회) • 평북 철산군의 독립만세 시위운동(3) 105 려 주시오. 상제 앞에 호소하리다. 불태우리라. 불태 우리라. 내 가슴에 끓은 피가 방울방울 불이 되어 저  섬나라를 불태우리라. 불태우다가 다 못 태우면 물 고 씹고 하리라”하고는 숨졌다. (현대 표현으로 일부  고침)  희생자의 이름, 13세 소년의 비장한 죽음 이야기 는 김병조의 책에서만 전한다. 이 책은 이후의 철산 상황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이로부터 시작하여 적이 예배집회를 금지하며,  교회당 문과 길에 지켜 서서 성경을 압수하고 구금하 며 여신도를 구타하여 만세를 부른 자는 가리지 않고  총살한다 하며, 왕래하는 사람을 구타 포박하여 길에  다니는 사람이 끊어졌다 한다.”  4월 7일 백양면과 이후 상황 백양면에서는 4월 7일 밤 8시경 풍천동과 그 외 3 개 동 기독교인 등 면민 300명이 풍천(豐川) 경찰관 주재소와 백양면 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풍천경찰관 주재소에서는 철산으로부터 경찰관 5명 과 보병 11명의 지원을 얻어 해산시키고 주모자 27 명을 검거하였다. 철산의 상황은 이후에도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 다. 이는 이 지역 민심 동향을 보고한 평안북도 장관 후 지가와 리자부로[藤川利三郎]의 1919년 5월 6일자 보고에 잘 나타나 있다. “철산군에서는 지난번에 많은 사망자를 냈던 관계 로 비교적 관헌의 위력이 더함에도 이 지방은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지금 외부에서 여러 종류의 유언비 어가 유포되고 불온 인쇄물들이 배부되고 있다.” (끝)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3 ٠ 1운동의 지방시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원을 역 임 했고,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3 ٠ 1운동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를 새롭게 정리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집필, 강연을 하고 있다. 필자 이정은 1930년 대 초 철산군청의 모습(황종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