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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미국 ‘토종’ 오하이오주에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호소하다 103 였다. 북미한인학생회를 창립할 당시 로스앤젤레스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0년 주영한은 인디애나주 업풀랜드의 테일러 대학(Taylor University)에 입학 하였다. 1924년 4월 워싱턴의 구미위원부 사무원으 로도 잠시 있었고, 학업을 위해 오하이오주 클리블 랜드로 가서 상업학교를 다녔다. 1930년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차오멘’ 식당을 경영하여 사업적으로 성공했다. 1937 년 7 월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 그의 식당 건물에 ‘일본 물품을 배척한다’는 대형 선전물을 써붙였다. 애크 론으로 이주하여서도 음식사업이 잘 되었다. 1943 년 3월 1일 3·1절 제24주년 기념 만찬에서, 주영한 은 일본 침략의 제일 희생자인 한국만이 미국으로부 터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애크론 의 유지들에게 전후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는 결의 안에 서명하자고 요청했다. 만찬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 결의안에 자신들의 이름을 썼다. 주영한은 “나의 조국이 자유를 되찾을 때, 나는 애크론에서 가장 행 복한 사람일 것이다”고 하였다. 한국독립과 임시정 부 승인에 서명한 결의안은 미국 대통령, 국무부장 관, 상하 양원 외교위원회, 오하이오주 상원·하원의 원 등에 보냈다. 국민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문화재전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미주한인사회의 한국독립운동』, 『미주한인사회 의 독립운동가』, 『권승렬 평전』, 『일제의 한국농업정책사연구』, 『일왕을 겨눈 독립투사 이봉창』 등이 있다. 필자 김도형 주영한의 한국독립을 요구하는 인터뷰(『The Akron Beacon  Journal』 1944년 3월 2일자) 주영한이 발간한 『공개편지(Open Letter)』 제5호 제1호(1947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