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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2025년 8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월의 전설(117회) 을 열었다. “우리, 독립 만세 시위를 하세.” “그러세.” 이들은 그 자리에서 ‘조선자주독립’이라고 쓴 대형 깃발을 만들었다. 저녁 무렵 이들은 여산면 헌병분견 소에서 서남쪽으로 약 200m 떨어진 지점에 집결했 다. 일동이 깃발을 흔들며 독립만세를 부르자 200여 주민이 호응하고 나왔다. 헌병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전라북도장관 이진호는 이때에도 다음과 같이 상 황을 낙관하는 보고를 했다. “익산군 여산면에서 3월 10일(9일의 오류) 저녁 무 렵 면민 약 200명이 시위군중을 이루어 불온한 폭 동을 기도하였으나 헌병이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그후 평온하며 어떤 폭동 등의 징조 없음.” 금마면 익산시장, 세번의 만세시위 3월 18일 오전 8시경 왕궁면 도순리 김광덕(金光 德, 34세, 농업)이 같은 동리 강성교(康聖敎)의 집에서 송종석(宋宗錫, 37세)에게 조선독립만세를 외치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그날 오후 1시 경 금마면 익산시장으로 나아가 “조선독립만세”를 외치 며 군중을 이끌었다. 조선독립만세 소리가 장터를 뒤 흔들었다. 5일 후인 3월 23일 오전 10시경, 다시 장날을 맞아 송종석이 금마면 익산시장에서 군중들에게 만세시 위를 권유하면서 군중들과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이 어갔다. 헌병이 출동하여 송종석을 체포했다. 그 다음 장날인 3월 28일 오후 3시, 금마면 익산시 장에서 세번째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날은 춘포면 창평리 농민 소진석(蘇鎭碩)이 금마면 익산시장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익산면 이리장터, 대규모 유혈사태 4월 4일 낮 12시 30분경, 기독교인 300여 명이 익 산면 이리시장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태극기 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장꾼들이 호응 하여 삽시간에 약 1천 명으로 불어났다. 시위대는 거 리 행진에 나섰다. 헌병이 출동하여 해산을 명령했으 나 시위대는 듣지 않았다.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계속 외치며 읍내를 행진했다. 헌병 분견대는 시위를 저지 여산면 신막 구거리에 세워진 ‘여산 독립만세 운동 기념비’ 3 · 1운동 당시 여산 헌병분견소 자리(현재 여산초등학교 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