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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2025년 6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이 없었다. 주영한의 삼촌은 1904년 3월 4일 시베 리아호를 타고 이민을 온 주인상이다. 주인상은 부 인, 아들, 장모와 함께 하와이로 왔다. 그런데, 주영 한은 하와이에 삼촌 주인상과 같이 온 것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국민보』 1937년 13월 1일자에 는 “주영한 씨(김양식 씨의 자제)”라고 되어 있다. 김 양식은 1905년 5월 29일 차이나호를 타고 ‘홀 아비 (widower)’로 하와이 이민을 온 사람이다. 주영한은 1913년 하와이 한인기숙학교를 졸업 하고, 1915년 호놀룰루에서 소학교를 졸업했다. 이 승만이 교장으로 있던 한인중앙학원을 졸업한 후, 1916년 4월 9일 샌프란시스코로 왔다. 북미로 와서 는 로스앤젤레스 공립중학교 1학년으로 편입하였 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중학교를 다니면서 대한인국 민회 로스앤젤레스지방회에 등록하였다. 1918년 7 월 로스앤젤레스 성경학원에 다녔고, 로스앤젤레스 한인복음회 간사와 한인복음청년회 서기를 맡았다. 1919년 3월 로스앤젤레스지방회 재무로 선출되었 고, 나성한인교회에서 직원으로도 활동하였다. 이승만이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를 설립하면서 1920년 5월 2일 로스앤젤레스 공채발매위원회 총무 에 홍치범, 서기에 김태진, 외무에 주영한을 선정하 주영한의 독립운동 선전활동 기사(『신한민보』 1920년 12월 30 일자) 주영한이 개최한 1943년 3 · 1절 기념행사(『The Akron Beaco n Journal』 1943년 3월 2일자) 주영한이 클리블랜드 차오멘 식당 경영 당시 모습(『The Plain Dealer』 1935년 6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