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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전설(117회) • 전북 익산의 만세시위(1) 101 서 1914년에는 이리역에서 전주까지 전라선이 1차 준공되었다. 이와 함께 익산 군청이 익산면 이리(裡 里)로 옮겨왔다. 이리는 철도 개통 이후 군청이 이전 하면서, 익산의 새로운 행정 거점이자 교통 중심지로 떠올랐다. 익산군은 이런 변동으로 군의 기관과 시설 이 기존 읍내와 신설 읍내에 분산되어 있었다. 시장 도 이리·황등(황등면)·웅포(웅포면)·함열·여산·금마(金 馬: 익산읍)의 6개 시장이 비슷한 규모였고, 장날도 여산, 웅포시장은 같은 1, 6일, 함열·금마 시장은 같 은 2, 7일로 겹쳤다. 그리하여 중심이 분산되고, 특정 장날에 대규모 시위를 일으키는 데 제약이 있었다. 독립선언서의 전파 1919년 3월 1일 오전 11시 30분 천도교 인쇄소 보 성사 사무원 인종익(印宗益)이 독립선언서 1,800매 를 들고 전주역에 내렸다. 전주와 청주에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3월 2일 천도교 익산교구장 이중열(李仲悅)은 천도 교 전주교구로부터 독립선언서 100장 묶음 다섯 뭉 치를 건네받으며 다음과 같은 요청을 받았다. “군산, 함열, 김제, 논산 등에 분배하여 고종 국장 전날인 2일 밤 안으로 다수가 통행하는 장소에 반포 해 주시오.” 이에 따라 선언서는 지역별 책임자들에게 분배되 었다. 이중열은 함열 방면 책임자 송일성(宋一成)에 게 두 뭉치, 군산방면 책임자 이유상(李有祥)에게 한 뭉치, 김제방면 책임자 김제 교구장 이풍이(李豊伊) 에게 한 뭉치, 이리 방면 착암저 이현면(李賢面)에게 반 뭉치, 익산 읍내 책임자 홍영변(洪永變)에게 반 뭉 치를 나누어주었다. 이들은 각 지역 신자들과 협력하여 선언서를 읍 내 와 길목에 배포했다. 전라북도 장관 이진호(李軫鎬)는 3월 3일 아침 전 라북도 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전주, 군산, 이리, 기타의 군에서 인쇄된 독립선언 서를 배포했던 자가 있었으나 현재 민정에 이상은 없고 그 배포자는 천도교 신도임…” 3월 4일 인종식이 청주에서 붙잡혔다. 전라북도 장관은 독립선언서 배포 상황을 조사하여 다음과 같 이 보고하고 있다: “지난 3월 1일 경성 천도교 본부 인종익은 (중략) 이리로 되돌아가 이리 천도교구장 이중열에게 약 200매를 교부하고 관내 호남선 각 역에서 배부한 것으로 보임. 3월 5일까지 발견된 것은 약 200매 로 큰 반향을 미친 정황은 없다. 현재 민정은 평온 하다. 여전히 현장 경계 중. 관계자 중 다수는 경찰 에 검거되었음.” 이러한 상황은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지방에 단 순히 전달, 전파하는 것만으로 만세시위가 곧바로 일 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역 인사들이 민중 을 조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여산면, 최초의 만세시위 3월 9일 일요일. 여산면 원수리 정영모(鄭永謨)의 집에 이정(李侹 )이 박사국(朴士國), 이병석(李秉釋) 등 동리의 양반 네 명이 모였다. 술자리에서 이정이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