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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미국 서북부 태평양 연안 ‘시애틀’에서의 한국독립운동 101 제공했다. 그는 미국 이민국이 있는 천사도에서 근무 하다가 1938년 4월 5일 정신이상으로 샌프란시스코 중앙병원에 입원했다가 5월 9일에 세상을 떠났다. 워싱턴주의 대한인국민회 야키마지방회 워싱턴주에서 많은 한인들이 살던 지역은 ‘시애 틀’이다. 1910년대 ‘시애틀’ 다음으로 많은 한인들 이 거주하였던 지역이 ‘야키마(Yakima)’이다. ‘야 키마’라는 지명은 이곳 원주민 부족의 이름이다. 야 키마족은 원래 야키마 계곡에 살았는데, 이 지역은 좋은 토양이 많았기 때문에 백인 농민들이 정착하 기 시작했다. 이주민들과 원주민들과 치열한 전투 가 일어나, 원주민들이 패하고 말았다. 이들 원주민 들은 현재 야키마 인디언 보호구역(Yakama Indian Reservation)에 살고 있다. ‘야키마’는 북쪽으로 오레곤주, 아이다호주로부터 몬타나, 와이요밍 각 처를 연결하는 중심지이다. 야 기마는 사과, 포도, 호프(hop) 등의 농장이 발달하여 많은 한인 노동자들이 이들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 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찍부터 야키마에는 한인들 이 몰려들면서, 대한인국민회의 경찰소가 설립되었다. 1918년 2월 28일 24명의 한인들이 대한인국민회 지방회 설립을 청원하여, 그해 3월 16일 야키마지방 회가 정식으로 조직될 수 있었다. 대한인국민회 야키마지방회의 설립에 대해 당시 『신한민보』에서는 ‘서부 일대의 만리장성’이라고 표 현하고 있을 정도로 미국 서북부지역 한인들의 중심 지였다. 야키마지방회관은 지방회 설립 이후 건물을 임대하여 사용하다가 1919년 1월 3일 건축공사를 마치고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신한민보』 1919년 1 월 16일자 기사에 의하면, “워싱턴주 야키마지방회 의 지방회관 건축은 여러 번 보도한 바 동(同) 지방 회는 이 달 3일에 건축공사를 마치고 낙성식을 거행 하였다”라고 보도하였다. 또한 1920년 3월 12일자 『신한민보』 기사에는 “야키마지방회는 3월 2일 독립 선언 제2년 재류 동포 전체가 퍼스트 스트리트(First Street) 607번지 지방회관에 나아가 다같은 예식을 순서로 거행하였다”고 한다. 국민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문화재전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미주한인사회의 한국독립운동』, 『미주한인사회 의 독립운동가』, 『권승렬 평전』, 『일제의 한국농업정책사연구』, 『일왕을 겨눈 독립투사 이봉창』 등이 있다. 필자 김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