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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2025년 8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월의 전설(117회) 전북 익산의 만세시위(1) 1919년 3월 2일 익산군에 독립선언서 전해져 3월 9일 여산면에서 최초 만세시위 전개 3월 18 · 23일 왕궁면 · 금마면 ‘조선독립만세’ 외쳐 4월 4일 익산면 이리장터 시위, 일본 군경 발포 5명 희생, 10여 명 부상, 중심인물 12명 체포돼 글  이정은(월간 『순국』 편집위원,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익산과 이리 익산은 전라북도 가장 북쪽에 자리한 호남의 관문 이다. 1906년 일제의 한국통감부 시기부터 행정구 역 변동이 심했다. 그해 전주군 동일면, 서일면, 남 일면, 남이면, 북일면, 우북면이 익산군에 편입되었 다. 1914년 4월 1일 전국적인 지방행정구역 개편 때 에는 용안군, 여산군, 함열군이 익산군에 통합되었 다. 그러다 보니 여산군과 남쪽의 용안군, 서남쪽의 함열군이 각기 고유의 구심력을 지닌 채 독립적으로 기능했다. 여기에 이리가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일제는 만경평야 쌀을 수탈하기 위해 1911년 7월 10일 호남선 중 대전-연산간 구간을 개통하고 이리 역을 신설했다. 이듬해인 1912년 3월 6일 군산과 이리를 연결하는 군산선(23.1km)이 완공되었다. 군산은 전국에서 대표적인 쌀 수탈 항구였다. 이어 ➊ 당시 익산면 이리시장 주변의 1: 50,000 지도  ➋ 일제강점기 이리역(왼쪽)의 모습 ➌ 옛 익산군 관아 부속건물 훈호당에 있었던 징벽지(澄碧池)에서  기념촬영한 익산공립보통학교 교사들(1925년, 이상 필자 제공) ➊ ➋ 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