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page
100 2025년 7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정건은 1923년 6 월 19일 미국 해군에서 제대하였다. 샌프란시스코 천사도 이민국에서 근무한, 옥종경 시애틀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한인은 ‘옥종경’이 다. 옥종경(원명 玉振)은 평양 출신으로 일본 아오야 마학원(靑山學院)을 졸업하고, 세브란스전문학교에 도 다녔다. 그러다가 1912년 7월 미 국으로 유학을 와서, 1913년 8월까 지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 지 방회에서 활동하였다. 옥종경은 오하이오대학 재학 당 시인 1918년 말 미주한인학생단 (The Korean Students’ League of America)이라는 단체에 가입했다. 오하이오주에 있던 한인 학생들은 미국민들에게 우리 민족의 실정을 알릴 ‘영문월보’의 필요성이 있다고 하여, 학생들이 10달러 혹은 20~30 달러를 내어 1919년 2월 말경 제1 호의 잡지를 발간하였다. 미주학인 학생단 회장은 이춘호, 사무원 안종 순, 재무 옥종경·윤영선, 서기 이병 두·임병직, 월보기자 김현구·박줄리 엔 등이 임원을 맡았다. 옥종경은 1922년경 오하이오대 학을 졸업하고 국내에도 다녀왔다. 1923년부터 1931년까지 시애틀에 8년 정도 거주하였다. 그는 『신한민 보』 1925년 1월 1일부터 22일까지 4회에 걸쳐 「나의 정치관」이라는 논문을 게재하였다. 이 글에서 이승만의 하와이 학생 야구단이 고국을 방 문하여 돈을 낭비하였고, 워싱턴군축회의에서 의연 금을 거두었으나 외교에 실패했다고 비판하였다. 옥종경은 1931년부터 시애틀에서 샌프란시스코 로 이주하여 생활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 코지방회 총무 등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자금을 대한인국민회 야키마 지방총회가 있었던 워싱턴주 야키마 607번지의 모습 워싱턴주 야키마 607번지 근경